첫 폴케호이스콜레 (The first Folkehøjsk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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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폴케호이스콜레 (The first Folkehøjskole)

1830년도에 그룬트비는 그의 영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일종의 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왕이 일종의 공무원 학교를 설립하도 하자는 것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덴마크의 미래 행정가들이 평범한 농부, 어부, 잡부, 상인, 가정부의 아들과 딸들, 즉 평범한 대중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교육을 받아 그들의 요구와 필요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어, 이후 시민을 더 잘 섬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여러 이유로 인해 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룬트비의 아이디어는 덴마크 평범한 시민을 위해 큰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폴호이스콜레를 통해 시민들은 1849년 덴마크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 권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권한과 자부심을 얻게 되었다.

1844년 11월 7일, 첫 폴호이스콜레가 설립되었다. South Jutland, Rodding의 작은 마을 18명의 농부가 바로 그 학교의 첫 학생이 되었다. 그 이후 여러 학교가 전국에 설립되면서 차츰 폴호이스콜레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1864년 덴마크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덴마크 토지의 40%에 해당하는 Schleswig와 Holstein을 잃으면서 폴호이스콜레 운동에도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10년도 채 안 되는 동안 50개의 폴호이스콜레가 덴마크 나머지 지역에 새롭게 설립된 것이다. 이 학교들의 주된 관심사는 국가가 새로운 상황에 맞설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난 세기의 모든 폴호이스콜레는 강한 민족주의 정신으로 무장되었다. 덴마크 역사, 문화, 언어, 지역 등 현재와 미래의 덴마크 전망에 대한 강한 관심이 쏟아졌다.

모순적이게도 독일 전쟁 패배는 덴마크의 도약, 특히 농부들의 자기계몽에 의한 번영의 출발점이 되었다. 폴호이스콜레의 확장에 더불어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구축했는데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그들은 함께 조합이 운영하는 목장, 도축장, 구매조합 (소비자 조합), 보험, 은행 등을 만들었다. 이 모든 조합은 각각 모든 조합원이 의사결정에 있어서 같은 영향력을 갖는다는 연대와 공동체 원칙을 토대로 설립되었다. 조합에서의 투표권은 각자 얼마나 많은 자산을 가졌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1인 1표”라는 원칙에 따라 주어졌다. 이는 각 개인이 특별하고 비교할 수 없는 객체로 존중받는 대중교육과 폴호이스콜레의 원칙과 그 연장 선상을 함께 한다.

SBS 다큐멘터리 : 협동조합은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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